인류세 빗소리
이 승 현
바람결 흐름 따라 정처 없는 구름이라도
제 마음 갖고 있어 때때로 지상을 향해
제 몸을 삭혀가면서 암호문자 타전하지
있는 듯 없는 듯이 소리 없는 안개비로
응답이 올 때까지 쉼 없이 오는 가랑비
격정에 복받칠 때는 회오리성 태풍 군단
구름이 타전하는 암호를 해독해 보면
먼 세월 견디며 온 빙하의 울음소리
인류세 그 나이테 속에 고스란히 박힌다
아내여, 잠시 쉬었다 가세
지금껏 걸어온 길 돌아보면 물레방아
흐르는 물이 적으면 무릎도 닳지 않아
식솔들 끼니 걱정은 해도 삭신은 편했지
콸콸 넘치는 물에 숨돌릴 새 없는 날
낱알이 수북이 쌓여 웃음꽃 만개해도
속에는 물집과 멍울 깻묵처럼 굳었지
이끼 낀 세월의 물길 이제는 돌려놓고
덜컹대는 디딜방아 잠시 세워놓고
가을볕 온기가 담긴 노을 한 잔 드세나
강을 읽다
소리 없이 울고 있는 저 강의 속울음을
그대 들을 수 있는 짐승이 되어 보라
강바닥 구르는 모래알 울부짖는 여울물
소문이 난무한들 귀 닫은 두꺼비가
상류로부터 오는 도도한 물소리를
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, 제 소리에 묻혀서
그래도 한 번쯤은 강물을 바라보라
꽃향기 봄 강물도 흙탕물로 범람하는
강물의 이치를 읽는 그 순간이 올 게다
이승현
2003년 유심 등단.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. 나래시조문학상. 서울시문학상. 올해의 좋은시조집상 수상. 시조집 『빛 소리 그리고』, 『사색의 수레바퀴』, 『아내에게 바치는 연가』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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