내가 쓴 시조

나래시조 2024 겨울호 발표작(인류세 빗소리. 아내여, 잠시 쉬었다 가세, 강을 읽다)

이승현 시인 영상 앨범 2025. 1. 26. 04:29

인류세 빗소리

이 승 현

바람결 흐름 따라 정처 없는 구름이라도

제 마음 갖고 있어 때때로 지상을 향해

제 몸을 삭혀가면서 암호문자 타전하지

 

있는 듯 없는 듯이 소리 없는 안개비로

응답이 올 때까지 쉼 없이 오는 가랑비

격정에 복받칠 때는 회오리성 태풍 군단

 

구름이 타전하는 암호를 해독해 보면

먼 세월 견디며 온 빙하의 울음소리

인류세 그 나이테 속에 고스란히 박힌다

 

아내여, 잠시 쉬었다 가세

 

지금껏 걸어온 길 돌아보면 물레방아

흐르는 물이 적으면 무릎도 닳지 않아

식솔들 끼니 걱정은 해도 삭신은 편했지

 

콸콸 넘치는 물에 숨돌릴 새 없는 날

낱알이 수북이 쌓여 웃음꽃 만개해도

속에는 물집과 멍울 깻묵처럼 굳었지

 

이끼 낀 세월의 물길 이제는 돌려놓고

덜컹대는 디딜방아 잠시 세워놓고

가을볕 온기가 담긴 노을 한 잔 드세나

 

강을 읽다

 

소리 없이 울고 있는 저 강의 속울음을

그대 들을 수 있는 짐승이 되어 보라

강바닥 구르는 모래알 울부짖는 여울물

 

소문이 난무한들 귀 닫은 두꺼비가

상류로부터 오는 도도한 물소리를

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, 제 소리에 묻혀서

 

그래도 한 번쯤은 강물을 바라보라

꽃향기 봄 강물도 흙탕물로 범람하는

강물의 이치를 읽는 그 순간이 올 게다

이승현

2003년 유심 등단.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. 나래시조문학상. 서울시문학상. 올해의 좋은시조집상 수상. 시조집 빛 소리 그리고, 사색의 수레바퀴,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

 

 

'내가 쓴 시조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도떼기 시장  (0) 2025.01.26
정형시학에 발표된 작품(귀가하는 대숲 바람, 지의류, 맘)  (1) 2025.01.26
영끌족의 독백  (0) 2024.01.28
인연은 우연과 필연의 융합  (0) 2023.06.09
봄, 피라미떼  (0) 2023.03.24